원망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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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발 작성일12-03-13 07:43 조회4,868회 댓글0건본문
원망하지 않는 삶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은 오늘의 상속이다.
전생은 금생의 과거요 내생은 금생의 미래이다.
사람들은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전생을 생각하고 내생을
바라보며 금생을 살아가는 이는 흔치 않다.
왜 어제는 돌아볼 줄 알면서 전생은 묵살하고, 내일은
기약하면서도 내생은 잊고 사는 것일까? 그것은 전생과
내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지금 이 순간에 너무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산의 모습과 같이, 우리의 삶 또한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기 마련이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한 애착 때문에, 보이는 것 밑에서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잊은 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하여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할 뿐 아니라,
보이는 세계까지 지배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고난 속에 처하였을 때는 더 문제이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만 하여도
보다 편안하고 향상된 길로 나아갈 수 있을 터인데,
'그 무엇'을 무시하여 버리는 어리석음 때문에 더 큰 고난
속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란 정녕 무엇인가? 바로 '업(業)'이다.
내가 지어 내가 받는 업이 그것이다. 특히 '악업(惡業)'은
무섭다. 악업은 인정사정이 없다. 내가 지은 악업이 무르
익으면 '나'에게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괴로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이다.
이러한 인과의 법칙을 확실히 믿고서,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 '나'의 지은 바에 대한 과보라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능히 업을 녹여 향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만, 고난에 처하여 남을 원망하거나
회피만 하는 사람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러므로 달마대사께서는 고난에 처하였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셨다.
내가 오랜 옛적부터 무수한 생애 동안 근본을 버리고
말초적인 것만 쫒아, 생사의 물결 속을 떠다니면서
무수한 원한과 미움을 쌓았으리라. 또한 남의 뜻을
거스르고 피해를 준 일도 무한하리라. 비록 지금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숙세에 내가
지은 악업의 열매가 익었을 뿐, 하늘이나 다른 사람이
벌을 주는 것이 아니니, 오직 내가 지은 바를 받는
것이다.
我從往昔 無數劫中 棄本從末
流浪諸有 起多怨憎 違害無限
今雖無犯 是我宿殃 惡業果熟
非天非人 所能見與
달마대사의 이 말씀처럼,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고통은
숙세에 지은 악업의 열매가 무르익어 나타난 것일 뿐이다.
이것을 확실히 믿는 자는 능히 고난을 넘어설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원한과 미움을 수레바퀴의 축으로 삼아
끝없이 윤회하게 된다.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 때 천태종을 세운 대선지식
천태지자 스님은 어느 날 천태산에서 지관삼매(止觀三昧)에
들어 계셨다. 그때 스님의 앞으로 산돼지 한 마리가 황급히
지나가더니, 뒤이어 활을 든 사냥꾼이 쫓아와서 여쭈었다.
"산돼지 한 마리가 이리로 지나갔는데,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아십니까?"
스님은 대답 대신 사냥꾼을 앉게 한 다음 한 수의 노래를
불렀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져 뱀의 머리가 부서졌도다
죽은 뱀은 돼지가 되어 돌을 굴려 꿩을 쳤다네
죽은 꿩이 포수가 되어 다시 돼지를 쏘려 함에
빈승이 인연을 밝혀 맺힌 원한을 풀어주려 하네
烏飛梨落破蛇頭
蛇變爲猪轉石雉
雉作獵人欲射猪
道師爲說解寃結
지자대사는 노래를 부르신 다음, 지관삼매에 들었을 때
관찰한 사냥꾼과 돼지의 삼생인연(三生因緣)을 일러주셨다.
"엽사(獵射)여, 지금부터 삼생 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배나무 가지 위에 앉아 놀다가, 무심코 다른 곳으로 날아
가 버렸다. 그때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다 익은 배가 하나
떨어져 배나무 아래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던 뱀의 머리를
때렸다.
이 때문에 죽은 뱀은 다시 멧돼지로 태어나 풀뿌리를 캐
먹으며 살았고, 까마귀는 죽어 꿩이 되었다. 어느 날
꿩은 떨어진 나무열매를 주워먹다가, 멧돼지가 칡뿌리를
먹기 위해 땅을 뒤질 때 건드린 돌이 굴러 떨어져 맞아
죽고 말았다.
엽사여, 그 꿩이 죽어 이번에는 그대가 된 것이다. 그대는
지금 반드시 활로 멧돼지를 쏘아 죽이면, 멧돼지 또한
원한을 품고 죽어 앞날에는 더욱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되느니라.
엽사여, 이제 그 활을 던져버려라.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악연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영원히 악연 속에서 떠돌아
다니게 되느니라."
지자대사의 말씀을 들은 사냥꾼은 깨달은 바가 있어 그
자리에서 활을 모두 꺽어 버리고, 지자대사의 제자가 되어
도를 닦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烏飛梨落).'는 속담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잘못된 인과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우쳐
주고 있다.
육도 윤회의 세계 중 지옥.아귀.축생의 몸을 받았을 때는
지은 업에 대한 과보를 받기만 할 뿐이다. 스스로 업의
고리를 푼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의 몸, 사람의몸을 받았을 때만 스스로의 의지로 맺힌
업을 풀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은 오늘의 상속이다.
전생은 금생의 과거요 내생은 금생의 미래이다.
사람들은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전생을 생각하고 내생을
바라보며 금생을 살아가는 이는 흔치 않다.
왜 어제는 돌아볼 줄 알면서 전생은 묵살하고, 내일은
기약하면서도 내생은 잊고 사는 것일까? 그것은 전생과
내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지금 이 순간에 너무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산의 모습과 같이, 우리의 삶 또한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기 마련이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한 애착 때문에, 보이는 것 밑에서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잊은 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하여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할 뿐 아니라,
보이는 세계까지 지배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고난 속에 처하였을 때는 더 문제이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만 하여도
보다 편안하고 향상된 길로 나아갈 수 있을 터인데,
'그 무엇'을 무시하여 버리는 어리석음 때문에 더 큰 고난
속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란 정녕 무엇인가? 바로 '업(業)'이다.
내가 지어 내가 받는 업이 그것이다. 특히 '악업(惡業)'은
무섭다. 악업은 인정사정이 없다. 내가 지은 악업이 무르
익으면 '나'에게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괴로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이다.
이러한 인과의 법칙을 확실히 믿고서,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 '나'의 지은 바에 대한 과보라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능히 업을 녹여 향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만, 고난에 처하여 남을 원망하거나
회피만 하는 사람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러므로 달마대사께서는 고난에 처하였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셨다.
내가 오랜 옛적부터 무수한 생애 동안 근본을 버리고
말초적인 것만 쫒아, 생사의 물결 속을 떠다니면서
무수한 원한과 미움을 쌓았으리라. 또한 남의 뜻을
거스르고 피해를 준 일도 무한하리라. 비록 지금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숙세에 내가
지은 악업의 열매가 익었을 뿐, 하늘이나 다른 사람이
벌을 주는 것이 아니니, 오직 내가 지은 바를 받는
것이다.
我從往昔 無數劫中 棄本從末
流浪諸有 起多怨憎 違害無限
今雖無犯 是我宿殃 惡業果熟
非天非人 所能見與
달마대사의 이 말씀처럼,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고통은
숙세에 지은 악업의 열매가 무르익어 나타난 것일 뿐이다.
이것을 확실히 믿는 자는 능히 고난을 넘어설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원한과 미움을 수레바퀴의 축으로 삼아
끝없이 윤회하게 된다.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 때 천태종을 세운 대선지식
천태지자 스님은 어느 날 천태산에서 지관삼매(止觀三昧)에
들어 계셨다. 그때 스님의 앞으로 산돼지 한 마리가 황급히
지나가더니, 뒤이어 활을 든 사냥꾼이 쫓아와서 여쭈었다.
"산돼지 한 마리가 이리로 지나갔는데,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아십니까?"
스님은 대답 대신 사냥꾼을 앉게 한 다음 한 수의 노래를
불렀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져 뱀의 머리가 부서졌도다
죽은 뱀은 돼지가 되어 돌을 굴려 꿩을 쳤다네
죽은 꿩이 포수가 되어 다시 돼지를 쏘려 함에
빈승이 인연을 밝혀 맺힌 원한을 풀어주려 하네
烏飛梨落破蛇頭
蛇變爲猪轉石雉
雉作獵人欲射猪
道師爲說解寃結
지자대사는 노래를 부르신 다음, 지관삼매에 들었을 때
관찰한 사냥꾼과 돼지의 삼생인연(三生因緣)을 일러주셨다.
"엽사(獵射)여, 지금부터 삼생 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배나무 가지 위에 앉아 놀다가, 무심코 다른 곳으로 날아
가 버렸다. 그때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다 익은 배가 하나
떨어져 배나무 아래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던 뱀의 머리를
때렸다.
이 때문에 죽은 뱀은 다시 멧돼지로 태어나 풀뿌리를 캐
먹으며 살았고, 까마귀는 죽어 꿩이 되었다. 어느 날
꿩은 떨어진 나무열매를 주워먹다가, 멧돼지가 칡뿌리를
먹기 위해 땅을 뒤질 때 건드린 돌이 굴러 떨어져 맞아
죽고 말았다.
엽사여, 그 꿩이 죽어 이번에는 그대가 된 것이다. 그대는
지금 반드시 활로 멧돼지를 쏘아 죽이면, 멧돼지 또한
원한을 품고 죽어 앞날에는 더욱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되느니라.
엽사여, 이제 그 활을 던져버려라.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악연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영원히 악연 속에서 떠돌아
다니게 되느니라."
지자대사의 말씀을 들은 사냥꾼은 깨달은 바가 있어 그
자리에서 활을 모두 꺽어 버리고, 지자대사의 제자가 되어
도를 닦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烏飛梨落).'는 속담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잘못된 인과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우쳐
주고 있다.
육도 윤회의 세계 중 지옥.아귀.축생의 몸을 받았을 때는
지은 업에 대한 과보를 받기만 할 뿐이다. 스스로 업의
고리를 푼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의 몸, 사람의몸을 받았을 때만 스스로의 의지로 맺힌
업을 풀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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