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부처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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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교대학 작성일12-10-06 02:55 조회8,962회 댓글0건본문
천하 사람들의 눈을 열다
금릉에서 달마 대사와 양무제와의 그 역사적인 만남은 불행인가?
다행인가?
아무튼 유명한 대화를 남겨
오늘날까지 선불교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즉 “여러 가지 불사를 하여 큰 복을 지었는데
그것이 어떤 공덕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이 한 마디가 천하 사람들의 눈을 열어주는 지침이 되었으며
올바른 불교공부의 기준이 되었다.
만약 이 한마디 말이 없었더라면 불교도들은 지금까지
자기와는 상관없는 밖을 향하여 부단히 찾고 있었을 것이다.
절을 지어 복을 닦으며 탑을 쌓아 공덕을 짓고
온갖 보시와 선행으로 공덕이 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것이 성불의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삿된 견해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덕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성불의 바른 길인가?
달마 대사는 양무제가 그동안 해 온 불사로는
한갓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날 수 있는 과보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무한한 생명과 무한한 광명의 대 해탈과 진여열반의 삶과는
그 거리가 십만 팔천 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원만하여
그 자체가 스스로 공적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상의 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즉 사람 사람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그 본성의 공덕과 청정한 지혜는
세상의 일이나 인위적인 수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추고 있어서 누가 가져갈 수도 없으며
새롭게 다듬거나 장엄하거나 닦을 것이 아닌
그 사실을 아는 것뿐이다.
만약 수행을 통해서 새롭게 닦거나 장엄한다면
그것은 마치 본래 있는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하나 더 올려놓는 것과 같다.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본래부터 이미 해탈이 되어 있고
부처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이다.
한량없는 복덕과 한량없는 신통을 다 갖추고 있어서
조금도 더할 것이 없는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뜻을
설파한 것이다.
인간이 본래로 그렇게 위대한 존재거늘 하물며 양무제가 다시 물은
‘성스러운 진리로서 제일가는 도리’가 따로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
역사적 만남의 두 사람의 대화는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그러나 그 어긋난 대화가 다행히도 먼 후대에까지
사람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게 하였으며,
불교를 바로 가르치고 수행을 바로 하게 하는 거울이 되고
지침이 되어 바른 견해[正見]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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