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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 | 두타산 삼화사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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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7-31 15:52 조회1,1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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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石燈 ]

능묘 앞에 두는 것을 장명등(長明燈)이라 하며

석등류는 통틀어 석등롱(石燈籠)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석등은 다른 대부분의 석조물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가람배치양식에 따른 한 구조물로서 전래되어 

등기로서의 기능과 사원 공간의 첨경물(添景物)로서의 기능을 함께 발전시켜왔다

통일신라시대에 많이 건립된 석등의 기본양식은 

하대석(下臺石) 위에 간주(竿柱:中臺石)를 세우고 그 위에 다시 상대석(上臺石)을 놓아 

화사석을 받치고 그 위를 옥개석(屋蓋石)으로 덮어 평면이 8각으로 조성되어 있다

석등은 이와 같은 8각의 기본형이 주류를 이루면서 내려오다가

8각의 4면에 보살상이나 사천왕상을 조각하는 등 

시대적 ·지역적 특징을 보이면서 발전하여왔다.

지방적인 특징으로서는 전북 남원(南原) 실상사(實相寺) 석등이나 

임실(任實)의 용암리(龍岩里) 석등과 같이 

고복형(鼓腹形)의 간주(竿柱)가 나타나는 예를 들 수 있고

충북 보은(報恩)의 법주사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이나 

경남 합천(陜川)의 영암사지(靈岩寺址) 쌍사자석 등은 

기본적인 각부재(各部材)를 갖추고 있으나

그 형태가 변형된 이형양식(異形樣式)의 예로 들 수 있다.

고려 전기에는 통일신라 때의 8각형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차차 독자적인 양식을 이루어 사각형을 기본형으로 하되 

원형의 간주 위에 사각형의 앙련석(仰蓮石) ·화사석 ·개석(蓋石)을 얹었으며

충남 논산(論山)의 관촉사(灌燭寺) 석등, 개성시 장풍군 현화사지(玄化寺址) 석등이 대표적이다

사자석등형의 이형양식은 경기 여주(驪州) 고달사지(高達寺址) 쌍사자석 등의 예와 같이 

이 시대에도 건조되었으나 신라 때와 같이 쌍사자가 두 발로 서서 직접 상대석을 받치지 않고 

사각형의 하대석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뿐 상대석을 직접 받치지 않고 

그 위의 다른 부재가 받치도록 되어 있는 점이 다르다

한편 고려 후기의 공민왕 현릉(恭愍王玄陵)의 장명등과 같이 

석등을 사찰뿐만 아니라 능묘에도 장명등으로서 건조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이를 본떠 왕릉에는 반드시 장명등을 세우게 되었다

그 양식은 경기 여주의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神勒寺普濟尊者石鐘) 앞 석등과 같이 

이보다 앞서 유행하였던 세장(細長)한 간주(竿柱) 대신 중대석(中臺石)으로 형태가 바뀌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찰의 창건이 억제됨에 따라서 석등의 건조도 극히 드물었다

충북 중원(中原)의 청룡사지(靑龍寺址) 사자석등과 

경기 양주(楊州) 회암사지(檜巖寺址) 쌍사자석등의 예에서 

조선 전기에 이형양식의 석등이 건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타산 삼화사에는 비로전 앞, 약사전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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